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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ALVATION ARM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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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일보] ‘동네사랑방’ 구세군 첫 선교적교회, 웃음소리 넘친다
  • 작성일2017/10/17 00:00
  • 조회 751

평일은 카페, 주일은 예배당… 충남 ‘부여영문 카페교회’ 가보니

김만오 사관(뒤에 서 있는 이)이 지난 13일 충남 부여군 구세군 부여영문 카페교회에서 퀼트와 캘리그래피 수업을 위해 방문한 여성들과 함께 커피를 마시며 포즈를 취하고 있다. 그 뒤로 한 쪽 팔을 길게 늘여 사람을 품는 형상을 한 하얀 십자가가 벽에 새겨있다.

 

부여영문 카페교회 모습.

 

 

 

낙화암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 허름한 빌라들 사이 시골길에 서울 강남에서나 봤을 법한 세련된 카페가 눈에 띄었다. 붉은 벽돌과 목조로 깔끔하게 꾸며진 카페 안 한쪽 벽면에는 사람을 품을 듯 한쪽 팔을 길게 늘인 십자가가 빛을 밝혔다. 동네 주민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 이곳은 사랑방이 됐고 교회가 됐다. 충남 부여군 구세군 부여영문 카페교회(김만오 사관)를 지난 13일 찾았다.

 

카페교회에 들어서자 커피콩 볶는 고소한 향이 가득했다. “목사님 안녕하세요”라는 인사와 함께 손님들이 찾아오자 덩치 큰 김 사관은 커피를 직접 내려 일일이 대접했다. 김 사관은 “등록 교인이 아니더라도 커피 맛보러 부담 없이 찾는 손님이 많다”고 소개했다. 

 

이곳은 한국구세군 최초의 선교적 교회다. 초대교회와 같이 건물보다는 공동체와 선교를 중시하는 교회다. 지난해 10월 27일 개척된 이곳은 평일은 카페로, 주일은 예배당으로 변신한다. ‘S.A Story’라는 카페 간판은 구세군(Salvationarmy)의 영어 약자에서 가져왔다.

 

이날 오전 한쪽 테이블에서는 바느질로 이불이나 쿠션을 만드는 퀼트 수업이, 반대쪽 테이블에서는 손으로 문자를 그리는 캘리그래피 수업이 이뤄지고 있었다. 30대 후반에서 40대 여성 10여명이 자발적으로 모였다. 무료로 퀼트를 가르치고 있던 김진옥(39·여)씨는 “서로 수다 떨며 바느질하다 보면 어느새 작품이 완성된다”고 말했다.

 

점심에는 한 할머니가 “정말 잘 익었다”며 자두를 한가득 들고 왔다. 할머니는 김 사관에게 어제오늘 있던 사소한 이야기를 털어놓으며 시간을 보냈다. 이웃 교회 전도사도 잠시 들러 이웃과 함께 나누라며 팥빙수 재료를 놓고 갔다. 김 사관은 “할머니들이 가끔 노트북을 가져와 도시 카페 젊은이들처럼 컴퓨터 작업을 한다”며 웃어보였다. 

 

오후 4시쯤 되자 부여초등학교 학생들이 뛰어 들어왔다. 김영환(9)군은 꼬깃꼬깃한 용돈을 내밀며 음료수를 주문했다. 이런 작은 마음이 모인 수익금 일부는 또래 친구들의 장학금이 된다. 김군은 음료수를 마시며 책꽂이에서 책을 꺼내 친구와 함께 읽었다. 한 손에 박카스를 들고 이곳을 찾아온 김아진(19)양은 “목사님이 친아빠처럼 편안하고 재밌게 대해준다”며 “편안하고 아늑해 힘들 때 생각나는 집 같은 곳”이라고 말했다.

 

카페교회는 밤 9시까지 불을 밝히며 아이들의 등하굣길 안전 지킴이가 된다. 토요일에는 지역 교사들의 독서 모임 장소로 인기다. 김 사관은 “시험 기간에는 공부하는 중·고등학생들로 가득 찬다”며 “그럴 땐 열심히 공부하라고 빵도 건넨다”고 웃으며 말했다.

 

주일은 카페교회 안 중앙에 위치한 접이문을 닫아 예배당과 카페를 분리시킨다. 주일 커피는 무료다. 일요일 커피 한잔하러 카페를 찾았다 흘러나오는 찬송에 감명받아 성도가 된 사람도 있다. 시골 교회지만 평균 연령이 38.5세 정도로 카페 문화에 익숙한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다.

 

김 사관은 2009년 상가 건물 2층에 있던 부여영문에서 목회를 시작했다. 작은 미자립 교회에는 찾는 이가 거의 없었다. 가지기보다 베풀기를 좋아하는 그는 임신한 아내를 위해 사 줄 팥빙수 아이스크림 하나 살 돈이 없을 정도로 가난한 시절을 보내야 했다. 그는 “사람 발길 뜸한 교회를 지키며 우울한 기분이 자주 들었다”고 회상했다.

 

카페교회가 생긴 지금은 ‘목회의 맛’을 알게 됐다고 한다. 웃음소리 끊이지 않는 동네 사랑방이 된 이곳에서 작지만 많은 걸 나누며 행복을 찾았다. 김 사관은 “육체적으로는 힘들지만 영적으로는 정말 행복하다”며 “영혼 아픈 이들이 이곳에서 소통하며 치유되는 모습을 볼 때 보람차다”고 말했다.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수 1:9)

 

김 사관은 선교적 교회를 처음 시작할 때 두려움이 가득했다. 하지만 지금은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 하나님만 바라보며 자신감이 생겼기 때문이다. 우는 아이에게 떡을 줄 수 있는 교회, 강퍅한 세상에서 나눠줄 수 있는 교회. 그런 교회를 김 사관은 꿈꾸고 있다. 

 

2017-10-17

김동우 기자

출처: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3817922&code=23111113&cp=d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