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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ALVATION ARMY

구세군스토리 Salvation Army Story

[호국보훈의 달 특별기고] '잊혀진 기억' 납북실종자 후생학원 18명의 악대원을 추모하며
  • 작성일2017/06/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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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생학원 악대의 납북 3개월 전 중앙회관에서 로드 사령관과 함께(1950년 5월) 

 

6.25전쟁의 참화 속에 담겨진 우리 아이들의 슬픈 역사

6.25 전쟁의 참화 속에 구세군이 흘린 순교자의 피와 실종자들 그리고 잘 알려지지 않는 많은 가슴 아픈 일 중에 하나가 바로 서울 후생학원 악대원 18명이 납북된 사건이다. 당시 부모가 없는 가여운 고아들이자 구세군 악대원들이 북으로 강제 행진하며 끌려갔다는 소식은 모두를 경악케 했다. 국제구세군 사회에도 소식이 알려지면서 많은 나라에서 납북된 후생학원 악대원을 위해 기도하였고 한국의 서울후생학원(Seoul Boy’s home/현재의 서울후생원)과 악대(Band)가 전 세계에 그 이름을 알려지는 때가 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후 후생학원 악대원의 납북은 제대로 주목받지 못하여 왔고 전쟁 후 재건과 미래를 향한 전진만으로도 숨가뿐 시간의 연속이었기에 제대로 된 사실 확인과 추모를 하기에는 역부족이었었다.

 

악대원 납북 당시 재연 장면


로드 사령관 납북되다
당시 후생학원 원장이었던 허원조 사관은 피난가지 않고 200여 명의 아이들을 돌보며 북아현동(현재의 아현영문 터전)의 후생학원을 그대로 지키고 있었다.
당시 많은 사관들과 성도들이 피난간 상황에서 원생 중에는 사관자녀 7명도 함께 고아라고 해서 보호받고 있었다. 북한군이 고아는 해치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후생학원을 수시로 찾아와 조사했던 북한군은 후생학원이 소장하고 있던 반짝이는 브라스 악기에 커다란 관심을 표했다고 한다. 8월에 들어서자 낙동강을 제외한 한반도 대부분에 북한군이 남하하고 전쟁이 치열해지면서 북한군은 곳곳에서 인적 물적 자원들을 북으로 압송하기 시작했다. 당시 구세군 사령관이었던 영국인 허버트 로드 사령관도 북한군에게 7월 1일 체포되어 납북되었을 시기였다.

행진연주하며 북으로 끌려간 18명의 악대원들
그러던 1950년 8월 17일 목요일, 일단의 북한군 장교와 군인들이 후생학원에 들이닥쳤다. 악대원들을 모두 소집하고 악기를 들게 한 후 강제로 행진과 연주를 시키며 북아현동 후생학원에서 끌고 나갔다. 만류하며 호소하던 사람들을 북한군은 총으로 위협했고 어린 원생들은 자신들의 집에서 북으로 끌려 간 것이다. 행진 도중 탈출한 원생들도 있었고 최종 납북되어 실종된 악대원은 18명으로 파악되었다. 최근 이들 후생학원 악대원들이 납북 3개월 전 5월에 중앙회관에서 찍은 사진이 발견되면서 그들의 면모를 볼 수 있게 되었다. 사진에 보이는 22명의 단원 중 18명이 납북된 악대원으로 보인다. 그리고 같은 시기에 납북되어 죽음의 행진(Death March)을 했던 허버트 로드 사령관이 함께 하였다. 

국제구세군 Faith Reborn(신앙의 재탄생)
헌정곡 작곡 연주
이런 끔찍한 후생학원 청소년 악대의 납북실종 사건을 접한 국제본영은 ‘순교자의 피’(Blood of Martyr)라는 기록영화를 제작하여 한국 구세군의 순교자 노영수 참령의 순교와 악대원들의 납북을 추모했는데 후생학원 악대 납북장면을 당시 KBS 드라마 배우들을 출연시켜 재연하여 촬영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1978년 런던의 ‘구세군100주년 국제총회’에 서울후생학원 악대를 초청하여 전쟁의 참화 속에서 다시 일어선 한국 구세군과 후생학원 악대를 전 세계에 소개하며 커다란 반향을 일으키게 되었다.
당시 런던의 세계적인 로얄 알버트 홀에서 연주회를 가진 23명의 후생학원 악대(정위 피터 우드 지휘)는 국제참모악대(International Staff Band)와 협연 및 솔로연주 등으로 갈채를 받았고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영국의 참령 콘돈(Leslie Condon)은 구세군 100주년 국제총회에서 받은 감동을 바탕으로 한국의 전쟁 수난과 회복 그리고 후생학원 밴드의 납북을 추모하며 미래의 희망을 꿈꾸는 시적(詩的) 관혁악곡 ‘Faith Reborn’(신앙의 재탄생)을 작곡하여 1982년 헌정하였다.
이 곡은 현재까지도 세계적으로 널리 연주되는 곡으로 한국 구세군의 선교, 한반도의 수난과 참상 그리고 회복과 전진을 표현하고 있고 한국 찬송 ‘삼천리 반도 금수강산‘의 선율도 포함되어 있다.

 

 

Faith Reborn 악보

 

국가 공식 납북실종자로 등재 공인

이런 후생학원 악대의 비극적 납북 사실을 재조명하게 된 것은 정부가 2012년 초 국무총리실 산하 납북자 진상규명 위원회에서 납북당한 사람들을 신고해 줄 것을 방송매체를 통해서 전국에 홍보하면서 부터다. 이 소식을 접한 구세군본영은 이를 역사적 사실로 파악할 필요성을 확인하고 사료검토와 진상조사에 착수하게 된다. 이를 통해 1954년 ‘한국전쟁납북사건자료원’에서 1954년 구세군 후생학원이 신고한 납북자인원과 명단을 입수하게 되었고, 이를 토대로 국무총리실에 신청하여 2013년 5월 7일자로 ‘6·25전쟁 납북 진상 규명위원회’에서 공식 납북자로 인정 공표를 하게 되었다.(해당 경과는 구세공보 2013년 1월호 김종선 참령의 글 참조) 납북된 18명의 후생학원 악대원은 우리 원생들이자 자랑스러운 구세군인들이다.

현재 18명의 생사는 전혀 알려 진바 없고, 생존했다고 해도 80대 이상이거나 대부분 이 세상 사람이 아닐 것이라고 짐작을 한다. 이 분들의 이름을 기억하며 우리 역사에 추모의 공간과 재조명의 시간을 갖는다.

 

 

 


​1978 구세군국제총회 음악 그룹포스터에 등장한 후생학원 밴드(맨우측 상단)

<납북이 확인된 서울 후생원 악대원 18명> 

강태설 / 김기모 / 김기영 / 김용덕 / 김준영 / 박종원 / 백남호 / 백장기 / 양태환 / 은희진 / 이순문 / 이양수 / 임춘길 / 정생규 / 차동욱 / 차순재 / 한규식 / 홍갑용

 

 

글 / 황선엽 사관(부정령, 구세군역사박물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