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ALVATION ARMY
구세군스토리 Salvation Army Story
후생학원 악대의 납북 3개월 전 중앙회관에서 로드 사령관과 함께(1950년 5월)
6.25전쟁의 참화 속에 담겨진 우리 아이들의 슬픈 역사6.25 전쟁의 참화 속에 구세군이 흘린 순교자의 피와 실종자들 그리고 잘 알려지지 않는 많은 가슴 아픈 일 중에 하나가 바로 서울 후생학원 악대원 18명이 납북된 사건이다. 당시 부모가 없는 가여운 고아들이자 구세군 악대원들이 북으로 강제 행진하며 끌려갔다는 소식은 모두를 경악케 했다. 국제구세군 사회에도 소식이 알려지면서 많은 나라에서 납북된 후생학원 악대원을 위해 기도하였고 한국의 서울후생학원(Seoul Boy’s home/현재의 서울후생원)과 악대(Band)가 전 세계에 그 이름을 알려지는 때가 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후 후생학원 악대원의 납북은 제대로 주목받지 못하여 왔고 전쟁 후 재건과 미래를 향한 전진만으로도 숨가뿐 시간의 연속이었기에 제대로 된 사실 확인과 추모를 하기에는 역부족이었었다. 악대원 납북 당시 재연 장면 로드 사령관 납북되다당시 후생학원 원장이었던 허원조 사관은 피난가지 않고 200여 명의 아이들을 돌보며 북아현동(현재의 아현영문 터전)의 후생학원을 그대로 지키고 있었다. 당시 많은 사관들과 성도들이 피난간 상황에서 원생 중에는 사관자녀 7명도 함께 고아라고 해서 보호받고 있었다. 북한군이 고아는 해치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후생학원을 수시로 찾아와 조사했던 북한군은 후생학원이 소장하고 있던 반짝이는 브라스 악기에 커다란 관심을 표했다고 한다. 8월에 들어서자 낙동강을 제외한 한반도 대부분에 북한군이 남하하고 전쟁이 치열해지면서 북한군은 곳곳에서 인적 물적 자원들을 북으로 압송하기 시작했다. 당시 구세군 사령관이었던 영국인 허버트 로드 사령관도 북한군에게 7월 1일 체포되어 납북되었을 시기였다. 행진연주하며 북으로 끌려간 18명의 악대원들그러던 1950년 8월 17일 목요일, 일단의 북한군 장교와 군인들이 후생학원에 들이닥쳤다. 악대원들을 모두 소집하고 악기를 들게 한 후 강제로 행진과 연주를 시키며 북아현동 후생학원에서 끌고 나갔다. 만류하며 호소하던 사람들을 북한군은 총으로 위협했고 어린 원생들은 자신들의 집에서 북으로 끌려 간 것이다. 행진 도중 탈출한 원생들도 있었고 최종 납북되어 실종된 악대원은 18명으로 파악되었다. 최근 이들 후생학원 악대원들이 납북 3개월 전 5월에 중앙회관에서 찍은 사진이 발견되면서 그들의 면모를 볼 수 있게 되었다. 사진에 보이는 22명의 단원 중 18명이 납북된 악대원으로 보인다. 그리고 같은 시기에 납북되어 죽음의 행진(Death March)을 했던 허버트 로드 사령관이 함께 하였다. 국제구세군 Faith Reborn(신앙의 재탄생) |
글 / 황선엽 사관(부정령, 구세군역사박물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