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세군한국군국 International Salvation Arm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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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영수 사관 (1897.1.3 ~ 1950.9.5 / 참령 / 경북 의성 출생)애송성구 : 마 10:28
- "몸은 죽어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
1919년 사관으로 임관. 31년간 10여곳을 담임.1949년 8월 진주영문 부임.
1950년 6.25전쟁 발발 시 군우들의 피난 권유에도 목회에 전념하다가 공산당에게 끌려가 사상전환을 강요받았으나,
"구세군 사관으로서 예수님을 위해 죽을지언정 무신론 집단인 공산주의자들을 찬양하며 양민을 기만할 수 없다"고 거절.
1950년 9월 5일 새벽 공산군의 총탄에 맞아 장렬히 순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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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삼석 사관 (1901.1.29 ~ 1950 / 고등정위/ 경북 의성 출생)애송성구 : 마 6장 33절
-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1928년 사관학교 졸업 . 경주,인천,부토리,원동,함흥,영덕영문을 거처 1948년 서대문영문 담임 중 6.25전쟁 발발.
다수 교인들이 남아있는 상황에서 영문과 교인들을 버려두고 떠날 수 없어 피난권유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보살피던 중 1950년 8월 23일 오전 10시경 기독교 민주동맹회의에 참석하라는 통지서를 가지고 온 2명의 청년들에게 주택에서 연행되어 당일 교계 지도자 50여명과 함께 공산군에게 인도된 후 납북되어 순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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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하 사관 (1920.10.3 ~ 1951 / 참위 / 경북 영양 출생)애송성구 : 딤후 2:3~4
- "네가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을지니 군사로 다니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이는 군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
1949년 8월 27일 사관 임관. 황해도 해룡면 부토리영문 담임 중 6.25사변 발발. 교인들을 피난시키고
거동이 불편한 노인을 보살피며 모시고 피난하려다 인민군에게 붙잡힘. 유창한 중국어로 공산당에 협조하라 권유했으나, 거절하여 인민군에게 납치되어 순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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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종섭 사관 (1925.12~1954.1.24 / 참위 / 전남 영광 출생)애송성구 : 눅 17:4
- "만일 하루 일곱 번이라도 네게 죄를 범하고 일곱 번 네게 돌아와 내가 회개하노라 하거든 용서하라"
1950년 6월 27일 전쟁 중 임관식 후 임지(대흥영문)로 가던 중 공산당에게 붙잡혀 사상전환을 강요 받았으나, 고집스럽게 예수를 전해 많은 고초를 겪었다. 2개월 후 내무서에서 방면되어 대흥영문에 부임해 몇 일 되지 않아 좌익세력에 부부가 매를 맞는 고초로 15일간 실신하기도 하였다. 전후에 영문부흥을 위해 애쓰다 공산당에 매를 맞은 것이 원인이 되어 각계영문 담임 중 1954년 백혈구 결핍증으로 순교. 그는 자기를 고문한 공산당 내무서원들이 잡혔을 때에 그들을 용서하자고 요청할 정도로 예수의 원수사랑을 실천한 참 그리스도인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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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영복 정교 (1914.8.15~1950.10.8 / 정교 / 서울 출생)애송성구 : 요 12장 24절
-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강원도 철원의 김화교회 정교로 6.25 발발 당시 영문을 지키며 봉사 . 1950년 10월 8일 , 패주하는 인민군이 철원리 상리 배우개 고개에서 예수 믿지 않는다고 하면 풀어준다고 회유하였으나 "그런 소리 마시오. 예수가 누군데 내가 예수를 배반한단 말이오? 나는 사나 죽으나 예수 사람이오!"라며 굴복하지 않아 끝내 총살 당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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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기모 사관 (1927.10.4 ~ 1950.09.28 / 참위 / 충남 예산 출생)
- 1949년 34기 ‘표준자’학기로 구세군사관학교에 입학하여 1950년 6월 27일 전쟁중에 참위로 임관을 받음,
그는 당시 서울대 재학생 2명과 함께 반공투쟁단을 조직하여 반공운동을 펼치던중 1950년 9월 26일 체포되어 이틀간 모진 고문을 당하시다 9월 29일 새벽 ‘대한민국 만세’를 부르며 공산당에 의해 총살 당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