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두바이는 아주 적은 양의 석유를 생산하고 다른 천연자원도 보잘것없는 절
망의 땅이었습니다. 그러나 두바이 지도자 ‘셰이크 무함마드’는 머잖아 고갈될 석유
를 팔아 오늘의 안락을 추구하는 대신, 국토 개발을 위한 인프라를 구축해 꿈의 도시
를 만들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두바이의 기적입니다. 절망의 땅 두바이가 전 세계적
으로 변화와 창조의 중심에 서게 된 이유는 바로 절박한 ‘위기의식’ 때문이었습니다.
본문을 보면 위기를 극복한 한 사람이 등장합니다. 그의 이름은 바디매오입니다.
당시 유대사회에서는 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저주해 그렇게 됐다고 믿었
습니다. 그러므로 시각 장애인들을 죄인으로 정죄하고 단정 짓는 풍조가 만연했습니
다. 시각 장애인들은 대부분 거지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시각 장애인이었던
그가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이 가진 질병을 완전히 고쳐 앞을 보게 됐
고 더 나아가 구원까지도 허락받는 변화의 삶을 살게 됩니다. 그렇다면 바디매오는
어떻게 이런 위기의 삶을 극복했을까요? 바디매오는 볼 수는 없지만 들을 수는 있었
습니다. 앞을 볼 수 없는 사람은 생존을 위해 특별한 곳이 더 발달하는데 그것이 바로 귀입니다.
바디매오가 예수님을 애타게 불렀던 이유가 바로 들을 수 있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많은 사람이 예수님에 대한 소식을 들었지만 듣는 것으로 끝나버립니다. 그러나 바디매오는 달랐습니다.
그는 예수님에 관한 소식을 듣고 믿었습니다. 50절 말씀을 살펴보면 예수님께서 부르신다는 말에 바디매오는 겉옷을 내 버리고 뛰어나갔습니다. 당시 거지들은 자신의 겉옷을 펼쳐놓고 구걸하는 관습이 있었는데 지금 바디매오가 겉옷을 벗어버렸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반드시 나의 눈을 고치실 거라는 믿음이 있었던 것입니다. 더 놀라운 사실은 본문 52절 말씀입니다. “그가 곧 보게 되어 예수를 길에서 따르니라.” 바디매오는 눈을 뜬 후에도 옛날 거지의 모습으로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가 되었습니다. 우리도 영적인 눈을 떠서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오늘의 기도 : 막다른 위기의 상황에서도 또 다른 길을 찾을 수 있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