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에 기록된 역동적인 초대교회의 모습은 이렇습니다. “믿는 무리가 한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제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32절)”, “그 중에 가난한 사람이 없으니 이는 밭과 집 있는 자는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그들이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누어 줌이라(34~35절)” 이 얼마나 감동적인 이야기입니까. 칼빈은 그의 주석에서 이 본문을 해석하기를 “이 기사를 읽고서도 감동을 받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강철보다 더 굳은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초대교회에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습니까?
첫째, 모든 사람의 마음이 사랑으로 충만했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한마디로 ‘주는 것’입니다. 내가 정말 사랑한다고 하면 아낌없이 줄 수 있으며,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어떤 희생이라도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내어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기 위해 목숨을 내어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이처럼 사랑은 무조건 주는 것입니다. 또 사랑은 ‘나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는 것’입니다. 나누며 사는 것입니다. 도우며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지상낙원이 되려면 모든 사람의 마음에 사랑이 충만해야 합니다. 그럴 때 살기 좋은 행복한 세상이 될 것임을 믿습니다.
둘째, 모든 사람이 자원하여 기쁨으로 나누었기 때문입니다. 누구의 강요에 의해 이 일을 한 것이 아닙니다. 마지못해 나눈 것이 아닙니다. 기쁨으로 자원하여 자유롭게 형편대로 나누었던 것입니다. 만일 아무리 좋은 일이라도 누군가의 강요에 의해 나누었다면 반드시 불평불만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러나 초대 예루살렘 교회는 모든 사람이 한마음과 한 뜻이 되어, 진정으로 한 가족처럼 한 몸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누구도 재물을 제 것이라 하는 자가 없었습니다. 자원하여 기쁨으로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누었기에 핍절한 사람이 한 명도 없게 된 것입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성령 충만하여 ‘자원하여’, ‘기쁨으로’ 했다는 사실입니다.
초대교회의 이런 감동을 우리도 누릴 수 있게 되길 축원합니다.
오늘의 기도 : 자원하여 나누는 우리가 되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