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원망하게 된 것은 단순히 ‘식량 문제’ 때문이 아니라 출 애굽 사건 자체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표면적으로는 먹을 식량이 없어서 불 평하는 것이지만, 내부적으로는 심각한 후회, 즉 애굽에서 나온 것에 대한 후회가 깃 들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광야에서 굶어 죽는 것보다는 차라리 애굽에 서 죽었더라면 더 나았을 것이라고 탄식하고 있으며, 이는 애굽에서 일찍 죽었더라면 공연히 출애굽도 안했을 것이고 현재의 고통도 없을 텐데 하는 것이 그들의 상황인식 이었습니다. 이것은 궁극적으로 백성들을 약속의 땅으로 이끌어 가려는 하나님의 계 획에 반하는 것이며, 고통 속에서 구출해 달라고 ‘탄식하며 부르짖었던(출 2:23)’ 자 신들의 과거를 망각하는 행위였습니다. 식량부족이 원망의 표면적인 이유로 제시되 고 있었기에 하나님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하늘에서 만나와 메추라기를 내려 배 를 채우게 하셨습니다. 만나라는 이름은 백성들이 하늘에서 쏟아진 “작고 둥글며 서 리같이 미세한 것(16절)”이나 “갓 씨 같고 희고 꿀 섞은 과자 같은 것(31절)” 그리고 갓 씨 같고 모양은 진주와 같은 것(민 11:7)을 처음 보았을 때 “이것은 무엇이냐”라고 외쳤던 데서 비롯된 이름입니다.
만나의 실체에 대해서는 아무도 정확히 알지 못하지만, 자연적인 현상과 관련하여 이해하려는 시도도 있었습니다. 이 만나와 메추라기 이야기는 독자인 우리에게 애굽 에서 일곱 번째 재앙과 여덟 번째 재앙을 떠올리게 합니다. 일곱 번째 재앙에서 하나 님은 하얀 우박을 비처럼 쏟아 부어 사람과 먹거리에 피해를 주신 반면(9:21), 이스 라엘 민족에게는 만나를 비처럼 쏟아 부어 주셨습니다. 같은 방식으로 애굽의 여덟 번째 재앙에서 하나님은 동풍에 메뚜기를 보내 애굽 온 땅을 뒤덮어 밭의 농작물에 피해를 주신 반면, 원망하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지중해에서 불어오는 서풍으로 메추라기를 몰아 진영 사방에 두 규빗이나 쌓이도록 하셨습니다. 아무리 원망하는 백 성이라 하더라도 여호와 하나님은 진 안에 있는 백성을 구체적으로 살피시고 돌보셨 습니다. 우리는 어떤 어려운 상황 가운데에도 만나를 주실 것을 믿고 기쁨으로 담대 히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오늘의 기도 :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원망하지 않는 삶이 되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