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어느 자리에 서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그래서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
이 있을 정도입니다. 그만큼 사람은 주어진 자리에 영향을 받습니다.
시편 1편은 우리가 어느 자리에 있어야 하는지 명확히 말씀합니다. 그 자리는 여
호와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리입니다. 이 자리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와 같습니
다. 철을 따라 열매가 맺으며 잎사귀가 마르지 않습니다. 이 자리는 하는 일마다 형
통한 자리입니다. 시편 저자는 이 자리에 있는 자를 복 있는 사람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리고 이 자리는 여호와께서 인정하신다고 고백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자리가 그
냥 주어지는 자리가 아닙니다. 이 자리에서 형통의 복을 누리기 위해서는 세 가지를
해서는 안 됩니다. 첫 번째로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않아야 합니다. 여기서 꾀는 충
고, 조언을 의미합니다. 악인들이 하는 충고와 조언에 귀를 기울여서는 안 됩니다. 두
번째로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않아야 합니다. 여기서 길은 태도와 방식을 의미합니다.
삶의 태도와 방식이 죄인들의 태도와 방식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
로 오만한 자리에 앉지 않아야 합니다. 여기서 오만하다는 표현은 경멸한 자, 완고한
자라는 뜻입니다. 거북이 등껍질처럼 딱딱한 완고한 마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서면 앉고 싶고 앉으면 눕고 싶은 것이 사람의 마음입니다. 모두가 시냇가에 심은 나무
가 되고 싶지만, 악인들의 꾀에 넘어가고, 죄인들의 길에 들어가며, 오만한 자리에 주
저앉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한 가지를 요구하십니다. 그것은 여호
와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것입니다. 국어사전에는 묵상(默想)을 눈을 감고 말없
이 마음속으로 생각하는 것으로 나와 있습니다. 그러나 히브리어로 살펴보면, 생각
하다, 사색하다, 중얼거리다 입니다. 그리고 이사야 31장 4절을 보면, 사자가 자기의
먹이를 움키고 으르렁 거리다고 할 때 묵상한다를 사용합니다. 묵상한다는 것은 소
극적인 표현이 아닌 적극적인 표현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의 자리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용맹한 사자처럼 담대히 외치며 복 있는 사람으로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오늘의 기도 : 주야로 말씀을 묵상하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