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의 비유는 마가복음에만 나오는 특이한 비유입니다. 농사꾼이 씨를 뿌린 다음
에 자고 깨고 하는 가운데 씨가 저절로 잘 자라서 충실한 곡식을 맺었다는 내용입니
다. 이 비유에서 사람이 한 일은 씨를 뿌린 것뿐입니다. 씨를 뿌리고 나서는 “밤낮 자
고 깨고” 했습니다(27절).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씨가 나서 자라는데 어
떻게 그렇게 되는지 알지도 못합니다. 모든 것이 ‘저절로’ 됩니다. 씨가 알아서 하고,
땅이 알아서 하고, 이삭이 알아서 합니다.
사람은 어떨까요? 사람은 그저 뒷짐 지고 가만히 있기만 하면 됩니다. 사람이 애
태우고 속 끓이고 잠 못 자고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뒷짐 진 농사꾼입니다. 뒷짐 진
농사꾼과 반대되는 사람은 팔을 걷어붙인 농사꾼입니다. 곡식은 주인 발소리에 큰다
면서 하루에도 몇 차례씩 밭에 찾아가고, 손끝이 거름이라고 부지런히 풀을 매주는
농사꾼입니다. 뒷짐 진 농사꾼은 딴판입니다. 밭에 호랑이가 새끼 칠 정도로 풀이 무
성해도 걱정 한 자락 하지 않고 내버려 둡니다. 천하태평입니다. 이 정도 되면 동네
사람들이 나서서 한마디씩 합니다. “아무개네 밭에 풀이 너무 많아.” 온 동네 사람들
이 다 시어머니입니다. 밭 주인은 가만히 있는데 다른 사람들이 참지 못하고 나서게
됩니다. 태평농법이고 자연농법입니다. 이 비유가 가르쳐 주는 것은 무엇일까요? 뒷
짐 진 농사꾼처럼 아무 일도 하지 말고 감나무 밑에서 감 떨어지기만 기다려야 한다
는 것은 아닙니다.
교회사에서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정적(靜寂)주의’입니다. 하나
님이 모든 것을 다 해 주시니까 우리는 그저 조용히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는 것입니
다. 믿음이 좋은 사람들 같지만, 이건 잘못된 신앙입니다. 이 비유가 일깨워 주는 것
은 이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열심히 하되 내가 뭘 한다고 교만에 빠지거나
자랑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모든 일을 이끌어 가시는 분은 하나님이고 우리는 들
러리에 지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주인공이시고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돕는 도구에
불과합니다. 우리 삶 속에서 하나님의 주도권 안에 회복되시기 바랍니다.
오늘의 기도 : 우리의 발걸음이 하나님보다 앞서지 않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