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은 교회 분열에 관한 문제를 마무리하고 그 외 고린도 교회에서 발생한 여러 문제를 차례대로 언급합니다. 그중 오늘 본문에서는 부도덕한 문제에 관해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서 일어난 다수의 음행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 중에서는 근친상간의 문제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을 놀라게 한 것은 교회 내에 서 일어난 음행의 문제 자체가 아니었습니다. 바울이 더 충격을 받았던 것은 음행의 문제를 대하는 고린도 교인들의 모습 때문이었습니다.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 리하고도 너희가 오히려 교만하여져서 어찌하여 통한히 여기지 아니하고 그 일 행 한 자를 너희 중에서 쫓아내지 아니하였느냐(고전 5:2)” 여기에 내포된 의미는 그들 이 음행하는 자들에게 관용을 베풀었다는 것과 자신들의 그런 관용에 자부심을 느 꼈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교회나 성도는 모든 것을 품고 용서하므로 그리스도의 사랑을 드러 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근본적으로 잘못된 말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것 자 체로 교회를 이해한다면 이는 교회의 본질을 왜곡하는 것이 됩니다.
교회가 용서를 기본으로 한다고 해서 ‘죄를 죄로 보지 않는다’라는 말은 아닙니다. 윌리엄 부스 역 시 ‘죄인의 구원’에 대해 이와 비슷한 말을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인들의 죄를 대속하셨다고 해서 죄인의 죄가 본래부터 없었던 것으로 여겨지는 것은 아닙 니다.” 이 말이 뜻하는 바는 ‘죄인을 용서하는 것’과 ‘죄를 다루는 것’은 별개의 문제 라는 것입니다. 바로 이 점에서 고린도 교인들은 ‘죄’를 대수롭지 않게 다루며 거기에 ‘자기 의’를 드러내고자 관용을 베푼 셈입니다. 그들이 베푼 관용은 회개와 죄 용서의 결과가 아 니기에 오히려 교회의 본질을 왜곡하고 악영향을 끼친 것이 되었습니다. 더불어 그 들의 보여준 행동은 자신들도 죄악에서 떠나지 못했음을 간접적으로 증명하는 것일 뿐이었습니다. 교회는 그리고 성도는 사랑보다 우선하는 계명을 세워서는 안 됩니 다. 그러나 그 사랑이 교회와 성도의 거룩성에 위배되거나 복음의 본질을 훼손하는 기만적인 사랑으로 변질되지 않도록 해야 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