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명의 그리스도인이 친구의 온실 안을 거닐다가 다른 여러 개의 화분으로 완전히 덮여 있는 작은 화분을 보았습니다. 그때 친구가 말했습니다. “내가 왜 이 작은 화분 주위를 어둡게 해놓았는지 자네는 알겠나? 그것은 말이야, 더 깊이 뿌리를 내리라고 그렇게 한 것이라네.” 좀 이상하게 드릴지 모르지만, 분명한 사실은 뿌리를 더 깊이 내리기 위해서는 그 주위를 어둡게 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고난을 통하여’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십니다.
바울에게 나타나는 성숙함이란 고난 중에라도 성령을 통하여 예수 생명의 힘과 부활의 확신 속에서 흔들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이 아느니라(1절)” 땅에 있는 장막 집이란 바울 자신의 육체를 비유한 말입니다. 그리고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란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변화될 성도의 영광스러운 부활의 몸을 비유하는 말입니다. 당시 바울은 아시아에서 여러번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그리스도의 재림 이전에 자신이 죽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죽음을 향해서 달려가는 자신의 육체가 일시적인 은신처 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현실적으로 볼 때 밤과 같은 때를 보내야 했던 그 시간 속에서 도리어 바울은 자신을 일으키시는 예수 생명의 능력을 누렸습니 다. 또한 고난을 통해 부활에 대한 믿음의 뿌리가 더 깊이 내려지게 되었습니다. 그는 부활의 몸을 입게 될 그 날을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부활의 은혜를 보증하시는 성령 안에서 바울의 이 기다림은 더 간절해졌습니다. 동시에 이 간절함은 주님 앞에서 이 땅의 삶을 성실하게 살아갈 동기가 되었습니다.
그리스도로 인한 고난은 부활의 소망과 예수 생명을 누리게 함으로 우리를 성숙하게 합니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영광의 몸을 입기 위한 과정이라는 것을 확신하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성령 안에서 영광스러운 부활의 몸을 소망하며 순종과 성실함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오늘의 기도 : 영원한 부활의 몸을 소망하며 살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