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읽은 본문을 보면, 자신이 내린 금식 명령을 하나님의 명령으로 동일시하며, 이를 어긴 요나단을 죽이려는 사울 왕을 보다 못한 백성들이 들고일어나는 장면을 보게 됩니다. “이스라엘에 이 큰 구원을 이룬 요나단이 죽겠나이까 결단코 그렇지 아 니하니이다 여호와의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옵나니 그의 머리털 하나도 땅에 떨어 지지 아니할 것은 그가 오늘 하나님과 동역하였음이니이다(45절)” 여기서 주목해야 하는 두 단어는 ‘구원’과 ‘동역’입니다. 구원은 위험으로부터 건짐 을 받고 다시 온전한 상태로 회복된다는 뜻입니다. 구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야샤 (yasha)’는 ‘공간을 마련해 주다’라는 깊은 뜻이 있습니다. 사울 왕은 아들을 전혀 필요 없는 죽음으로 몰아가고 자신과 백성들을 곤경에 빠 지게 하며, 스스로 자신의 공간과 입지를 점점 좁히고 있습니다. 공간을 마련하여 광활한 곳에 세우시는 하나님과는 정반대로 가고 있는 사울에 비해 요나단은 아버 지의 명령을 어겼지만 하나님과 동행하였습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과 백성들을 블 레셋으로부터 자유하게 했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그들의 공간을 넓혀주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과의 동역입니다. 사 울 왕은 종교 행위로 자신의 일에 하나님을 끌어들이려 했고, 요나단은 하나님의 일 에 자신을 던졌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요나단의 일이 되었고 이것이 하나님과의 동 역입니다. 그는 하나님을 믿고 단신으로 블레셋에 뛰어들었습니다. 그런 그를 하나 님께서는 총력을 기울여 도우셨고 결과는 대승입니다. 인간의 그 어떤 실패도, 그 어떤 결함도, 그 어떤 불행도, 그 어떤 저주도, 그 어 떤 고통도 예수님의 십자가와는 비교할 수 없습니다. 실패와 고통 가운데 나는 이제 끝났다고 생각한다면, 예수님에게 다시 십자가에서 죽으라는 것입니다. 절대 그래 서는 안 됩니다. 다시 일어나 하나님의 뜻에 자신을 일치시켜야 합니다. 최후 승리 를 믿으며 예수님의 십자가를 붙드십시오. 반드시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될 것입니 다. 오늘도 하나님과의 동행, 예수님과의 동행이 바로 동역임을 기억하며 살아가시 는 하루가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