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함 신앙을 한 단어로 표현하면 ‘약속의 신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란 땅을 떠난 것도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떠났습니다.
그러나 고민에 빠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가나안에 온 지 20여 년이 지났지만 아직 후손이 없습니다.
큰 민족과 큰 나라를 이루시겠다고 약속하셨는데 아들 하나 없이 100살이 다 되어 갑니다.
고대에 특히 근동지역에서 아들이 없다는 것은 인생의 보람이 없는 것이었고 치명적인 약점이었습니다.
본문의 말씀을 보면 아브라함도 영적인 침체를 겪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지치고 두려워하는 아브라함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시지만 더 이상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리기 힘들다는 듯이 다메섹 엘리에셀을 상속자로 삼아달라고 합니다.
후사의 문제는 아브람의 가장 큰 마음의 고통이었습니다. 이제는 아들이 아닌 종 엘리에셀을 후사로 결정하고 이 문제에서 놓임을 받고 싶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후사가 될 것이다(3절)”며 하나님의 뜻을 명확히 하십니다.
이때 아브라함은 자신의 의심을 접고 하나님께서 해결해 주실 것을 믿었습니다.
희망고문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기다리는 상황 속에서 주어진 작은 희망으로 인해 오히려 더 괴롭게 되는 상황을 지칭하는 말입니다.
희망이 아예 없다면 모든 기대를 포기하고 돌아설 수 있겠으나, 약간의 가능성이 보이므로 그 작은 가능성에 모든 것을 걸고 절망으로 벗어나려는 인간의 심리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이 아브라함의 이야기를 듣는다면 희망고문을 당했다고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희망고문을 당한 것이 아니라 약속을 믿고 기다리는 인내하는 신앙의 모델을 배우는 중이었습니다.
믿음은 우리가 바라는 것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확신을 갖는 게 아니겠습니까?
또한 아직 눈앞에 보이지 않는 미래의 일이라 할지라도 우리가 기대하는 것이 반드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는게 아닙니까?(히 11:1 현대어)
하나님의 뜻이 온전히 이루어지기를 소망하여 인내로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오늘의 기도: 낙심 가운데 있을 때 우리의 손을 잡아 주옵소서